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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화산 장가게 원가게 천문산 기행문
작성자 : 임형문 이메일 : moonlhm@hanmail.net
작성일 : 2009-07-31 14:11:12 조회수 : 5715
내용
화산 서봉 남봉 산행기와 진시황릉

♠삼복더위 속에서 7월 18일 아침 9시 20분 그린산우님 13명(강가딘포함)인천공항을 출발하여 북경시간 11시 20분 서안공항에 도착.
중국대륙은 모두 북경시간으로 통일되다보니, 우리나라와는 한 시간에 늦은 편차로 시간이 조정되나, 실제로 서울과 서안과는 2시간 30분에 시차가 있다.
공항을 나서니 40℃에 불같은 더위가 우리를 마중한다.
숨 막히는 뜨거운 태양아래 에어컨 가동으로 시원한 중형버스에 오르니 29세의 미남자 박철 조선족 가이드가 서안의 날씨와 지형 그리고 해박한 지식으로 역사적 유적의 설명을 들으며 밖을 보니 공장, 고층 아파트, 건물 등이 즐비하다.
중국인구의 95%가 한족으로 세계 인구에 25%에 해당되며, 56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남한에 98배에 땅을 가진 거대 국가이며, 中和사상으로 상대에게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며, 모든 상업적 계약관계는 잘 아는 사람을(인척) 통해서만 거래를
하며, 돈과 관련되지 않을 시는 남이 무슨 일을 하던지 상관이 없다.
서안은 주나라 남북조 수나라 당나라 명나라에 수도며, 장안으로 불리우고,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서쪽에 편안한 도시라 하여 서안이라 불리어 지금까지 서안으로
부르고 있으며, 황재의 무덤만 72기가 섬서성안에 있으며, 70기는 도굴되고 진시황과 측천무후에 무덤만 도굴이 아니 되었으며 살아서는 항주 소주, 죽어서는
서주(서안)이라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년 간 강수량은 400mm정도며, 7월 낮에 평균기온은 35℃정도이고,
40℃가 넘어서면 현장에 모든 작업은 중단되며, 시급이나 월급은 주어야 한다는데 아직까지 기상대 예보로는 아무리 더워도 38℃가 넘을 것이라고만 한다고 하며, 40℃가 넘는다고 예보하는 적은 없다고 한다.
섬서성은 한반도의 1.5배 크기며 인구 4천5백만, 서안은 850만에 섬서성에 수도이며, 진시황 때 수도였던 함양이 곁에 있다.
강태공이 낚시질을 했던 위수가 흐르고, 화산산맥으로 둘러쌓인 관중평야지대는
끝이 없어 보인다.
황하강의 지류인 위수는 10년 전만 하더라도 10톤에 배가 다니는 큰 강이었는데
계속되는 가뭄에 영향으로 지금은 자그마한 지류로 변하였으며, 북서방면으로 100km를 넘어서면 거대한 사막지대며 황사의 발원지라 늘 황사의 영향을 받으며
사막화 현상으로 걱정이 된다고 한다.

창밖으로 보는 드넓은 여러 군데 공사현장은 발전하는 중국대륙의 거대한 용이 깨어나 승천하는 모습이 우리나라의 팔구십 년대를 연상하게 만드는 가운데, 주점(호텔을 중국에서는 주점이라 부름)식당 특실에 들어서니 20가지의 요리가 둥그런 탁자위에 푸짐하여 어디로 손을 가야할지 몰라 하나씩 가져다 먹으며 50도 西鳳酒(서봉주)와 맥주를 반주로 넉넉한 중국식 식사를 즐기고, 서울에서는 희귀한 수양 회화나무가 정원에 늘어져 있는 서안 박물관에 들어서니,
천하명필 왕희지 구양순 필체의 커다란 비석들이 즐비하고, 불가에서 유명한
석가모니의 28대 제자 달마대사의 형상을 한 원도비석이 서있어 많은 관광객들
틈에서 사진으로 담아보며 잠시 1500년 전에 시간 속으로 들어가 본다.
숨 막히게 뜨겁던 태양도 저녁이 되면서 조금은 수그러지는 가운데,
서안 재일의 최고급 교자(물만두)집에서 22가지의 만두를 하나씩 가져다 고급 고량주와 맥주를 반주로 음미하며 먹다보니 모두들 배는 부르지만, 맛은 다 보아야 할듯하여 끝까지 코스 요리를 책임지니 남산이 따로 없구나.
♣여행기간 내내 최고급 호텔에 투숙하고, 최고급 식당에서 최고의 요리와 고급
고량주 1병에 맥주를 반주로 하였기에 더 이상은 말로 표현하지 않으리다.
금석주점(호텔)에 1219에 함충열 소장과 투수하여 옆방 가마공(김두승소장) 룸으로 들어가서 한 잔술을 마시며, 룸 폰으로 연락하니 모두들 모여들고 몇 순배를 기울이다 서안에 설레는 첫날밤을 보냄.

♠7월19일 금석호텔에서 朝食하고 8시 20분 강가딘 버스 편으로 출발.
차에 오르니 1학년 함소장이 카메라를 호텔에 두고 왔다며, 근심어린 표정으로 호텔로 뛰어가니 강대장이 웃으며 배낭이나 가방 속에 있을 거야하며 농을 던지니 대원들도 미소로 답하는데, 함공이 호텔에 없다며 가방과 배낭을 뒤척이니 그 속에서
카메라가 나온다. ㅎ ㅎ
10시 20분 화산 입구 연화산장 초입에 도착하여 개인당 60,000원에 입산 신고서를
제출하고 구름 낀 고온다습한 날씨 속에서 산행을 시작.
동양화를 보는듯한 구름 자욱한 사이로 하얀 화강암의 수천 길에 절벽이 우람하고 장엄해 보이는 華山(화산)이 우리들을 빨아드린다.
화강석 깔린 조금은 비탈진 길을 한발 한발 걸을 때마다 비 오듯 흘리는 땀방울이 온 몸을 적시는 가운데,
11시 30분쯤 한 두 방울 떨어지던 빗줄기가 갑자기 소나기로 변하니, 차라리 시원함이 느껴진다. 이곳에서는 가뭄이 계속되다 보니 비가 내리면 福雨라 하며 길조라
한다는데, 화산에 하늘이 우리를 환영하는 복비를 내리시니 그린에 축복이며 행운이라, 모두들 즐거워하며 둥그런 휴게소에 둘러앉아 비를 바라보며 김밥을 먹고 나니 언제냐는 듯 맑은 하늘로 변한다.
우거진 숲 사이로 기암괴석에 갖가지 형상을 한 하늘을 찌를 듯 한 절벽바위 속으로 빠져들다 보니, 헤아릴 수 없는 가파른 돌계단에 헐떡임도 줄줄 흐르는 땀방울님에 무더위도 이 아름다운 風光 앞에서는 행복하기만 하구나.
1,400m쯤에 회심석에 올라 커다란 바위 아래로 졸졸 흐르는 시원한 계곡물에 머리를 적시니 극락이 따로 없네 그~랴, 아~아 이 맛으로 산에 가는 거야~ 중간 중간에 수박도 아이스크림도 먹으며 갈증을 달래지만 생수만한 것이 없는데 물도 바닥이
나누나.
千尺童(천척동) 직벽에 가까운 촘촘한 돌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 百尺峽 바위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니 엷은 구름사이로 수 천 길에 낭떠러지와 오묘한 바위산들이 병풍처럼 펼쳐있구나.
겸재 정선에 금강산도를 보는듯하며 우리가 동양화 속에 들어있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눈부시게 맑은 태양아래 선선한 골바람을 맞으며, 손에 잡힐 듯한 거리의 기괴한
아름다움의 서봉 절벽을 바라보며, 아슬아슬한 능선 계단 길을 지나 금쇄관에 입구에 다다르니 수수 십 만개의 열쇠꾸러미가 쇠사슬에 걸려있고 붉은색 천이
쇠사슬 사이로 휘날린다.
♣남녀가 결혼하거나 애인에게 증표로 열쇠 면에 새기어 영원히 변치 말고 사랑하는 뜻으로 쇠사슬에 열쇠를 채우고 키는 천길 아래 낭떠러지로 버린다. 헤어지려면
절벽 아래로 가서 수많은 열쇠 중에 자기의 열쇠를 찾아 열쇠를 열고 이별을 하여야 한다는 깊은 뜻이 숨어있다.

오후 5시 반이 지나면서 서봉 정상언저리에 오르니 높은 고도의 영향으로 조금은
선선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숲속 평평한 돌길을 오르니 오늘에 목적지 연화산장(해발 2000m)이라 만보기를 보니 23,238보네.
정갈해 보이는 산장에 들어서서 배불리 저녁을 먹고, 물이 부족한 곳이라서 간단히 찬물로 몸을 씻고, 마당으로 나와 한 잔술에 별을 보며 뱅뱅이 타령으로 객고 애환을 달래니 몇몇은 추임새를 터뜨린다.
잠시 정전이 된 가운데 촛불을 켜고 두승공 룸으로 모여 술잔을 기울이다 2000고지서 잠을 청함.

♠새벽 5시에 기상하여 옥상에 올라 일출을 보려 하였으나 잔뜩 낀 구름으로 태양은 숨어들고 중천에 서성이는 눈썹 같은 하연달이 윤 5월 28일 일출의 애석함을 달래게 하누나.
7월 20일 7시 50분 연화산장을 출발하여 지척의 거리의 서봉(연화봉2082)에 올라
맑은 하늘에 아침 氣를 마시며 사방을 둘러보니 신선이 노니는 듯 한 바위들이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다 감추고 사람으로 보이기도 동물들로 보이기도하며 어제의 피로는 어디로 가고 가슴 벅찬 즐거움만 남는구나.
2천고지의 선선한 날씨 속에 화산 최고봉 남봉(낙안봉2155)에 오르니, 서쪽 너머로
5개의 신선바위가 우리의 발길을 붙잡는구나.
어떤 화공이나 어느 시인이라도 그림이나 글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듯 그저 눈을
감을 수밖에 없구나.
태양에 기울기도 조금은 올라서는 가운데 둥글둥글한 화강암 능선 길 을 걸어 동봉(조양봉2096)에 올라서니 이름 모를 뒷산의 절벽이 중천에 서럽구나.
중봉(옥녀봉2037)을 지나 북봉으로 향하니 케이블카 타고 올라오는 많은 관광객과 마주하는데 중국인들이 무어라고 엄청 떠들어대는 소리가 여기에서 왕왕 울어대는 매미소리와 비슷하다.
북봉(운대봉1614)에 올라 서남동중봉을 바라보며 사진으로 담아보고 케이블카로
이동하여 수직에 가까운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슬아슬하면서도 스릴이 넘치네.
하루를 죽기 살기로 걸어서 올랐던 길이 10분도 아니 되어 내려서니 귀가 조금은
왱왱거린다. 16,530보.
11시 30분 강가딘 버스에 올라 진시황 병마용을 관람하기 이동 중 1시에 월아애에
도착하여 고급식당에서 푸짐한 점심을 먹고,
오후 2시 숨 막히는 무더위 속에서 1.5km를 걸어 개인당 20,000원에
진시황제 병마용갱에(가로 65m * 세로 240m의 돔으로 만든 집) 들어서니 실물크기의 8,000에 병사들 중 일부 복원한 병사들과 조랑말(그 시절에는 서양 말들이 들어오지 아니하여 안장의 높이가 130cm정도로 크기가 작았다) 들이 앞줄에 진열되어
있고 80%는 원형 그대로 땅속에 묻혀 있다.
바로 옆 2호 3호 병마용갱을 구경하고, 차량에 올라 오후 5시 당현종과 양귀비에
사랑이 깃든 목욕탕이 있는 석류나무가 많은 별천지 화청지에 들어서니, 양귀비는 현종의 아들 수왕 이모의 비 였는데, 양귀비의 미색을 보고 64세의 현종은 23세의
양귀비 미모에 반하여 아들 수왕과 이별하게 하고 양귀비를 화산의 절로 보내
비구니로 만든 후에, 3년이 지나 환속시켜 현종에 귀비로 삼는다. 풍만한 미색에
가무와 음률이 뛰어나고 아주 총명한 166cm에 70kg정도의 풍만한 여인으로 요즈음으로 보면 뚱보인데, 그 시절에는 최고의 미인이었다니,
미인도 시절에 따라 오락가락~
당현종이 38세 양귀비 사별의 아쉬워함을 시인 백거이는 장한가에
“저녁이면 날아드는 반딧불에 그리움은 더해지고
외로운 등잔불을 돋우느라 잠 못이루네
서서히 울리는 종소리에 밤은 더욱 길어져
반짝이는 은하수에 동이 트려 하는구나.”

당태종 이세민에 커다란 목욕탕과 앙증맞은 양귀비 목욕탕, 조리하는 시녀탕,(당태종이 버린 물로 목욕) 태자탕 등 5개의 전각 안에 목욕탕이 있고, 지금도 사시사철 변함없이 43℃에 노상 온천물이 흐르며, 우리 모두 이 온천물에 손을 씻어보니 양귀비에 숨결이 느껴지는 듯 하누나.
푸짐한 석식으로 부른 배를 만지며 서안공항으로 이동하여 10시30분 장가게행 비행기에 탑승하여, 12시 40분 청하금강 인터내셔날 호텔(주점) 1311호에 투숙함.

♣호남성 장가게 원가게는 투가족에 땅이며 장가게 대부분은 張씨로 BC200년경
한고조 유방을 도와 항우를 무찌르고 천하를 통일하는데
일등공신을 세운 장량(장자방)이 유방의 내리는 벼슬을 마다하고 이곳 장가게에
은거하며 살았다하며, 투가족의 장씨들은 장량을 시조로
보고 있다.
장가게 원가게 천문산은 다음편에


★장가게 원가게 천문산기행
♠7월 21일 아침 9시 30분 새로 바뀐 가이드 이황(이택림+황선홍 닮음 성에 한자씩)이 차량으로 장가게 황룡동굴에 앞에 이르러 직경 3m~30m의 수십 개의 물레방아들이 서로 역 회전하며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석회암 지대의 커다란 동굴입구에 들어서니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는다.
십 여분을 들어가니 조그마한 선착장이 있고 20명씩 전기 동력으로 움직이는 배에 올라앉으니 10여 분간을 좁다란 수로를 따라 올라가며, 좌우상하를 보니 일곱 색깔의 조명등아래 기괴한 형상을 한 종유석 석순들이
쥐라기 공원을 연상하게 한다.
배에서 내려 통로를 따라 이동하는데 중국인 가이드들은 몇 사람을 앞에 두고
메가폰으로 요란스럽게 떠들며 무어라 설명하지만, 동굴 속으로 들어갈수록
장대하고 희귀한 종유석들이 우리에 혼을 빼앗아 버리니 중국인들의 떠드는
소리는 눈송이 떨어지는 소리로 들릴 뿐이다.
중간 안내문들이 한문 영문 한글 되어 있어 뿌듯함을 느끼는 가운데,
동굴 끝 지점에 다다르니 장춘체육관 크기의 돔 안에 수백 개의 자그마한 계단식
논 형태가 황색의 조명등아래 펼쳐있고, 3~40m 높이의 수십만 년 된 아슬아슬한
종유석들이 무리지어 서서 누가 큰지 키 자랑함을 뒤로하고 출구에
다다르니 8,120보네.
강가딘 버스에 올라 장가게 하룡공원으로 이동.
장가게 원가게는 양자강 지류로 주로 석회암, 방해석, 사암 지층으로 수백만 년 전 바다였는데, 지각 충돌에 의하여 지면이 1200m~1300m
융기하였으며 흙이나 모래 등 연약한 부분은 빗물이나 계곡물에 의하여 침식되고, 현제와 같은 기암괴석에 절경을 만들었다.
동서길이 31km, 남북길이 16km의 세계문화자연유산으로 복숭아 나무가 많아
복숭아 桃도자를 붙여 武陵桃源(무릉도원)이라 부른다.
케이블카를 타고 1256고지의 天子山에 하룡공원(모택동 혁명공신 하룡장군이 이곳 출신)에 올라 선녀헌화 바위, 명필 李公이 붓을 던졌는데 붓이 거꾸로 서서 바위가 되었다는 문필봉, 이름 모를 수많은 기암석을 뒤로하고 셔틀버스에 올라 점심을
먹으려 북한식당으로 고~.
‘동포 여러분 반갑습니다.’북한식당에서 오리 불고기등 육류에 담백한 평양냉면을
맛있게 먹고 바로 옆 북한상점을 들려보니 한복차림의 안내양들이 평상시
생각했던 南男北女에 美人은 아니다.
오후 1시 30분 원가게로 이동하여 5km의 모노레일을 타고 십리화랑에
맹호단청, 금수관천, 수성영빈, 전각루 등 암봉들과 봉림계곡의 풍경을 바라보며,
두승공 순례랑 혜란랑 무수공 네 명이 마주보고 앉아 여행의 추억을 남기기 위한
동영상을 찍다보니 종착역에 다다른다.

♣아뿔사! 10여분 후의 일이제만 하늘이 무너질 변고가 터졌겄다.
네 명중에 누군가가 실종하는 사고가 발생하였으니 아마도 이 동영상은 최후에
작품이 되었을 수도 ㅋ ㅋ ㅋ
우측에 우뚝 솟은 세자매봉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으려 하는데 은색왕관에 공주차림을 한 미녀들이 웃으며 팔짱을 끼운다.
즐거운 마음으로 일인당 1000원에 봉사료로 사진을 찍고서 모노레일에 오르려니,
ㄷ승이 아니 보이네, 한 참을 기다리다 조선족 가이드만 남겨두고 모노에 올라
정거장에 하차하여 주변을 살펴보아도 ㄷ승은 오리무중이다. 모두들 걱정이 되어
찾아보지만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네 강대장,우담공, 수호공 등 폰이 되는 소장들은 수없이 폰으로 전화도 메시지도 보내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록 감감 무소식이다.
처음은 애교석인 농담하며 기다렸는데, 이제부터는 어찌 되었을까 걱정이 앞선다.
한 시간 십 여분 후 가이드로부터 상봉했다는 연락을 받았고, 화끈거리는 얼굴에
얼떨거리는 표정으로 미안합니다. 하며 차에 올라 그간에 사정을 토로한다.

우리들이 우측 공터에서 사진을 찍는 사이에 언덕 모퉁이서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맛있게 피우고는 동료들이 아니 보이니 계단을 따라 세자매봉으로 올라간 줄 알고 줄기차게 올라서니, 30여m 앞에 무수공의 뒷모습이 보여 헐떡이며 쫓아가면 저만큼가고 하여 열심히 따라가는데, 가마꾼들이 1만원에 태워주겠다며, 흥정 아닌 겁을
주는데 뿌리치면 뒤에서‘씨발놈아’하는 소리가 귓전에 맴돌기를 수차례 한 시간여를 땀에 흠뻑 젖으며 극도의 공포와 불안 속에 앞만 보고 세자매봉에 오르니, 수십 통의 전화 중 그때야 강대장의 “빨리 정거장으로 내려오시오”메시지 전파가 들어오니 신발바닥이 타도록, 다시 겁주는 가마꾼들 사이를 10여분 만에 내려오면서 2년 전에 국망봉에서 길을 잊어 5시간을 헤맨 무수공을 생각하였다니, 해외 3학년 동기생으로써 아품어린 추억이로 세~
안도한 가마공이 메시지가 조금만 늦게 와야 하는 건데 그때 오는 바람에 두자매봉까지만 가고 세 번째 자매봉을 못 가게 되어 애석하다며 애교어린 넉살을 부린다.
하~하~하
이 시간 이후부터 ㄷ승은 가마공(우담공이 지음)이라는 아호를 얻음.
오후 3시 셔틀버스로 원가게 정상으로 이동하여 천리상봉, 녹야선종,
도어당, 낙타봉을 바라보며, 천 길의 절벽사이로 시렁처럼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구불구불한 난간 길을 걸어가며 바라보는 팔선산, 동자배관음, 금래동, 소천문,
오녀배수, 석탑사영, 천무노개, 천하재일교, 천벽백숙, 백조낙원, 후와원, 동장벽,
무해금구, 민수천산, 토끼망월,구천은하, 그린봉, 강가딘봉 등등 헤아릴 수 없는
기암석과 천 길의 절벽들이 엷은 구름사이로 가도 가도 끝이 없구나.
무릉도원에 별유천지 비인간이로세!
정상 언저리 숲속으로 난 길을 지나 자그마한 휴게소에 이르러, 가마공이 미안한
마음에서 포천 막걸리 4병 8리터를 쏘면서, 담배한대에 길을 잃은 칠칠이 스토리가 이 아름다운 풍치와 어울리니 모두들 흐뭇하지 않는 대원들이 하나도 없구나.
600높이의 백룡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며 바라보는 세상은 또 다른
즐거움과 희열을 느끼게 한다.
고급식당에서 푸짐한 저녁을 먹고 청하호텔로 돌아와 만보기를 보니
29,776로고, 신나는 기행도 발품을 팔아야 하는구나.
10시 30분, 한 시간가량에 저릿저릿한 하반신 맛사지를 받으니 꿈인지 생시인지 정신이 몽롱해지며 행복 넘치는 꿈나라 여행에 빠져드네.

♠7월 22일 아침 8시 30분 강가딘 버스에 올라 장가게 寶峰(보봉)호수에 배를 타기 위하여 선착장에 도착하니, 강대장이 썬그라스 3개를 포개 해를 보며 신기한 표정을 한다. 일식이 시작되는 현상을 대원들이 돌아가며 썬그라스로 보며 배에 오르니
가이드가 주변을 설명한다.
오른편 가장자리에 커다란 두꺼비 바위아래 자그마한 주점(여관)이 있는데
보름 때 여기서 하루를 숙박하려면 100만원이라네, 왜 이리 비싼지 물었더니
복을 가져다주는 두꺼비 바위가 달을 삼켜먹기 때문이라는데, 중국도 떡두거비
같은 아들 선호사상이 있나보다.
귀여운 투가족 소년 소녀가 호수 언저리에 서서 노래를 부르고, 우리가 탄 배에
투가족 여인이 노래를 부른 후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아 마이크를 넘기는데,
무수공을 지목한다.
송강 정철의 술에 대한 詩한수로 화답하니 선착장에 다다른다.
10시 30분 개기일식으로 대낮인데도 태양이 완전히 가려버린 한 밤중이 된 보봉호수를 등에 매고, 3명의 투가족 귀염스런 소녀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가운데, 태양은
달의 그림자에 완전히 가리 운다.
일생일대 보기 어려운 개기일식을 장가게에서 맞이하다니 천문학을 전공한 나로서는 너무도 감개무량하다. 이 하나만으로도 중국여행의 본전은 수수 배 뽑은
듯하구나.
점심 후 天門仙山 입구에 도착하니 세계에서 가장 긴 7,455m에, 지지대가 57개,
케이블카가 98개며, 시내 한가운데서 6명씩 탑승하니, 수 십동에 다세대 주택, 건물지붕 등 시내가 발바닥 바로 아래로 보이고, 큰 도로와 기차 길을 넘어서니,
푸른 숲에 웅대한 천문산이 지락이 발아래 펼쳐진다. 천문산 중턱쯤 오르니
자동으로 리프트가 변경되며 급경사에 가파른 천문산 절벽의 파노라마를 눈앞으로 보며, 짜릿한 풍광에 가슴 벅찬 설래임과 스릴 넘치는 희열을 만끽하며,
세상에 태어나 이 아름다운 대자연을 바라보는 자체로 행복함을 느끼다 보니 1,279m 정상에 다다른다.
천문산 뒤편 귀곡잔도를 따라 수천 길의 바위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만들어 놓은
소로 길을 따라 능소창원, 등소대를 지나 귀곡선동에 이르니 말굽처럼 둥글게
돌아가는 희한하게 아슬거리는 풍치가, 아무런 생각도 없는 구름마저 쉬어가게
하는 운치를 느끼게 하는구나.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천국의 세계에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니, 천문산을
오지 아니하였으면 인생에 무슨 樂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잊어버리게 만드는
가운데, 귀곡천참, 귀곡병반, 야불장보, 소천문, 관계곡동, 신선좌를 아~아! 감탄사만 연발하며, 몸과 마음이 천문산에 일부가 되어 지나니 천문산사에 다다른다.

♣귀곡자(BC435~343?)는 춘추전국시대 때 초나라 사람으로 천문지리,
병법, 경세술, 통치술등을 무문 통달한 전설적인 이인으로.
장의, 소진, 손빈, 방연이라는 4명의 제자를 두었는데, 방연이 먼저 하산하여 위나라의 제상이 되자, 아주 절친하였던 손빈이 방연을 찾아가니, 방연이 손빈의 재주를
시샘하여 거짓 모함으로 손빈에 손발을 자르고 돼지우리에서 생활하게 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름.
손빈은 그때까지도 팔배지교 사이인 방연이 자기를 도와주고 있다고 믿었는데, 후에 誠兒(성아)의 말을 듣고 방연의 짓임을 알게 되어
韜晦之術(도회지술 가짜로 미친 사람으로 행동함)을 써서 제나라 제상 순우곤에
도움으로 탈출하여, 제나라로 가서 軍師가 되어 위나라와 마릉에서 전투를 치루는데, 손자병서를 달통한 손빈에 월등한 전략으로 행군 중 밥을 짓는 방연에 위나라
군사를 공격하여 군사는 전멸하고, 방연 혼자 살아남아 곁에 있는 껍질이 벗겨진
커다란 나무에 새겨진 글을 보니 龐涓死此樹下(방연사차수하, 방연은 이 나무 아래서 죽는다.) 軍師孫臏(군사손빈) 확인하는 순간 수많은 화살을 맞고
방연은 여기서 죽는다.
손빈은 원수를 갚은 후 벼슬을 마다하고 石閭山(석려산 귀곡산중의 하나)에
은거하여 그 유명한 孫子兵法을 완성함.
손빈(삼국지에 오나라 손권의 중시조)의 스승 귀곡자가 평생을 은거하며 제자를
가르치고 살았던 곳이 바로 이 천문산 아래 귀곡계곡이며, 귀곡자의 이름을 따다
귀곡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우담공과 혜란랑은 천문산사로 들어가 시주한 후 큰 불상에 9배를 올리고, 풍광에
넋이 나간 대원들은 나무그늘에 앉아 빙수를 마시며 아름다운 대자연의 포만감에
얼이 빠져있는 모습이다.
하산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다 중간 정착점에 내려, 국립공원 셔틀버스에 올라
다시 99고개의 구불구불한 낭떠러지 길을 스릴 넘치게 돌고돌아 하늘로 통한다는 天門洞(산정상에 높이132m, 너비57m, 길이60m의 남북으로 뚤린 동굴 1999년 에어쇼에서 비행기가 이곳을 세워서 통과함) 입구에 내려서서, 999개의 上天梯 계단을 오르니 용의 여의주라 할 수 있는 절정의 절경을 품어내는 천무동 올라선다.
터널처럼 뚤린 골에 들어서서 시원한 맞바람을 마시며 흥에 겨워하는 대원들,
사진으로 담아보는 관광객들, 모두다 자연에 하나로다.
상천제 계단을 내려와 휴게소에서 시원한 수박으로 갈증을 달래고 셔틀버스를 타고 99고개를 내려와 중간 정착점에서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처음에 출발했던 시내
한복판 내려서 강가딘 버스로 청하호텔로 향하며 만보기를 보니 26,350보.
이곳 소매물가와 아파트 가격은 우리나라의 지방도시와 비슷하며,
기념품가게 동상 등 기념품값은 서울보다 훨씬 비싸며, 담배 값은
우리와 비슷하나 한 값에 일백만원이 넘는 담배도 있다고 한다.
비싸다하여 특별이 맛이 있는 것이 아니라, 벗들에게 뽐내기 위하여 한쪽
주머니에는 일반 담배를 다른 주머니에는 비싼 담배를 넣고
다니며, 혼자 있을 때는 일반 담배를 피우고, 귀한자리에서는 비싼
담배를 한 대씩 권하며 피운다고 하니 웃지 않을 수 없다.

♠7월 23일 장가게에서 호남성 장사공항까지는 버스로 4시간 거리로 이동하는 중 BC200년경 한고조 유방을 도와 천하를 통일하는데 일등공신을 세운 마왕 이청부부에 묘에서 나온 부장품과 미이라를 전시한
박물관에 들어서니,
2200년이 넘은 목곽관과 도자기 유물들이 조금도 변형이 없이 어제
만들어 둔 듯하며, 마왕부인에 미이라가 입고 있는 극세사에 실크
잠옷은 자그마한 성냥갑 속에 들어갈 정도로 아주 가늘고 정교하여 보인다.
비행기 탑승시간까지는 시간이 남는 관계로 발마시샵에 들리어 마사지를 받고,
장사공항에 도착하니 오후6시.
수많은 여행객중 유일하게 만보기를 처음 보며 관심이 많은 이황가이드에게 킬리만자로 정상까지 다녀온 만보기를 선물하니 아주 좋아하네.
3일간 정들었던 우리들과 헤어짐에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하여
박철가이드가 그러하듯 뒤도 보지 않고 총총걸음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공항청사로 들어서니 가슴이 뭉클하다.
오후 7시 30분 인천발 대한항공에 올라 가만히 눈을 감으니 무더위에 땀을 흘리며
오르던 화산의 풍광들, 장가게 원가게 천문산에 절경들,
길 잃은 가마공에 시골스런 소년에 모습들, 일생에 다시는 볼 수 없는
보봉호수의 일식, 술잔 들며 담소하는 대원들에 우정 어린 모습들이
南柯一夢(남가일몽)처럼 스쳐간다.
밤 10시 40분 인천공항에 도착.
코타키나바루, 일본 북알프스, 따구냥, 린자니, 안나푸르나 A.B.C,
킬리만자로, 화산 장가게 산행을 하며 오지를 개척하고 늘 최고의
호텔과 식당에서 넉넉하게 보살펴주신 0.1톤에 강철원대장님,
많은 지식으로 열심히 설명하며 마부가 되어준 박철 이황가이드님,
힘든 중에도 기쁨을 함께 나눈 김기홍, 임영무, 이운희, 박수호, 김성란, 김순례,
박혜란, 최진영, 박용주, 김두승, 함충열, 임형문님
모두들 감사하고 즐거웠습니다.
무수에 작은 글재주로 대자연에 절경과 3000년에 세월을 담으려니
무지개 뿜는 듯한 필체가 없어 부끄럽습니다.
내년 해외산행에는 더 많은 그린산우님들이 참여하여 드넓은 세상을
함께하시기를 바라옵니다. 감사합니다.

2009. 7. 18 ~ 7. 23일
017-297-4032 舞袖公 任 亨 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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